제1부 —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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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루는 것들
행동을 이해하는 데 쓸모 있는 간단한 모형을 만들기 위해, ‘나’를 세 가지 요소로 나누어 볼게요. 의식과 잠재의식, 그리고 몸이에요.
마음의 두 부분은 구체적으로 작은 의식(검은색 원)과 큰 잠재의식(흰색 원)을 말해요.
이 세 가지 요소가 함께 행동을 일으키고, 행동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경험해요.2 각 요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볼게요.
몸
가장 설명하기 쉬운 건 몸이에요. 몸은 의식과 잠재의식을 실어 나르는 수동적인 수단이에요. 중독 행동에서 몸은 가게 문이 닫히기 전에 와인 한 병을 더 사 오는 식의 심부름을 하는 부하죠. 정작 다음 날 헬스장에 갈 때는 그 의욕이 어찌 된 일인지 보이지 않아요.
몸의 입장에서 보면, 한쪽 선택의 끝에는 끔찍한 숙취와 껍데기만 남은 듯한 상태가 기다려요. 다른 쪽에는 엔도르핀이 솟구치고 더 건강하고 튼튼해진 몸이 기다리죠. 하지만 결정권은 몸에 없어요. 몸은 시키는 대로 하고 그 결과를 감당할 뿐이에요. 진짜 승부는 이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아요.
그렇다고 회복에서 몸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무척 중요해요. 몸이 건강해지면 의식과 잠재의식의 건강에도 다시 영향을 주고, 행동을 조절하는 데도 도움이 돼요. 다만 몸을 돌보는 일도 의식과 잠재의식이 움직여야 뒤따라오는 일이에요. 몸이 스스로 나아지겠다고 선택하지는 않아요. 그럴 수 없어요.
의식
의식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데 쓰고 있는 부분이에요. 자아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사용하는 부분이죠. 머릿속에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목소리예요. 2+2 같은 간단한 계산을 하고, ‘코를 긁어야겠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면 몸이 그 일을 하게 해요. 중독 행동이 계속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오직 이 차원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에요.
의식은 물론 대단히 유용해요. 하지만 의식이 나라는 존재의 전부는 아니에요. 특정한 기능과 일을 수행하는 도구로 보는 편이 좋아요. 오랫동안 이어져 온 행동을 바꾸는 일은 혼자 해낼 수 없어요.
흔히 의식은 행동의 약 5%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사람들이 자신을 의식과 완전히 같은 것으로 여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그리 큰 몫이 아니에요. 약점도 있고요.
의식이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어요. 일반적으로 초당 40비트 정도로 설명되곤 해요. 또 한 번에 하나의 작업만 처리할 수 있어요. 컴퓨터에 빗대면 ‘단일 스레드’로 작동하는 셈이죠.
또 다른 약점은 의식의 특기인 이성적 판단이 모든 일에 적합한 도구는 아닌데도, 의식은 좀처럼 자리를 내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지금쯤 의식은 행동이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의식이 활용할 수 있는 건 과거와 현재에 접한 것뿐이에요. 알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만 미래를 예상하고 전략을 세울 수 있죠. 이 점은 무척 중요해요. 더 넓은 전략 없이 술을 끊으려 하면, 의식에게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완전히 새로운 일을 맡기는 셈이기 때문이에요. 보통 사람에게 뇌 수술을 하라고 부탁하는 것과 같아요. 실제 뇌 수술 전문의가 아니라면 엉망이 될 거예요. 의식에는 도움이 필요해요.
잠재의식
잠재의식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예요. 아주 큰 존재이기도 하고요. 결정과 행동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대주주예요. 심장박동을 조절하고, 눈을 깜빡이고, 숨을 쉬는 것처럼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작용을 맡아요. 전반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위험에서 안전하게 지켜 주죠.
잠재의식은 끊임없이 활동하고, 대체로 의식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에서 나머지 95%의 행동을 이끌어요. 익숙한 영역에서 움직이기를 좋아하고,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알고 있는 것을 선호해요. 안타깝게도 지금 잠재의식이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아는 것은 알코올 의존과 거기에 딸린 모든 것이에요.
잠재의식은 어쩌다 이런 행동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을까요? 짧게 답하면 ‘환경과 조건 형성’이에요. 핵심 요소로 나누어 볼게요.
- 잠재의식은 본래 안전에 집착해요.
- 본질적으로 매우 사회적이에요.
- 더 큰 사회 집단에 맞추는 것을 안전하다고 받아들여요.
- 우리가 속한 더 큰 사회 집단, 즉 사회는 술을 좋아해요.
- 잠재의식도 거기에 맞춰져요.
잠재의식은 의식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처리하며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살펴요. 여러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고, 그 양은 흔히 초당 약 1,100만 비트로 추정돼요. 엄청난 양이죠. 그런데 의식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조차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해요.
잠재의식은 이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저울처럼 주변의 모든 내용을 저울질해요. 그중 가장 자주 반복되는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고 그대로 따라 하죠. 그렇게 주변에 어울려요. 알 수 없는 것과 거부당하는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지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꽤 당연해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상상해 보세요. 부모님, 문화, 음악, TV, 스마트폰까지 온통 일본의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겠죠. 그러면 자연히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맞춰지게 돼요.
일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프랑스인처럼 자라거나, 프랑스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갑자기 일본인처럼 자라지는 않아요. 그런 환경의 정보를 접하지 않았으니 잠재의식이 따라 할 것이 없는 거예요. 물론 국적은 조금 과장된 예예요. 하지만 음주 같은 관습에도 같은 원리가 작용해요. 술을 마시는 친구와 가족 사이에서 자라고, 영화와 TV에서 술을 보고, 또래의 취한 행동을 멋진 일로 여기죠. 그 모든 것을 따라 해요. 어울려요. 안전해져요.
밤에 놀러 나간 일, 술집에 간 일, 결혼식, 파티, 주말, 스포츠 경기, 콘서트, 그 밖의 수많은 일을 떠올려 보세요. 이런 경험이 모이면 엄청난 무게가 돼요. 같은 행동을 계속하겠다는 잠재의식의 결심이 더 단단해지죠.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깊이 새겨진 작동 방식을 의식적인 결심만으로 뒤집으려 해도, 장기적으로는 거의 효과가 없어요. 결국 잠재의식이 영향력을 발휘해 의식 속으로 생각 하나를 슬쩍 띄워 보내요. ‘딱 한 잔쯤은 괜찮겠지.’ 의식은 그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합리화해요. 몸은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요. 다시 원점이에요. 이성적 판단은 어디로 갔을까요? 무장 해제되고, 무력해지고, 속아 넘어갔죠. 다시 말하지만, 이 일에 맞는 도구가 아닌 거예요.
의식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건, 겸손할 줄을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이 모든 것을 바꾸려면 의식이 술을 끊겠다고 결정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의식은 이런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그다음 잠재의식과 협력해야 해요. 각각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면 행동을 바꾸는 데 더 효과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어요. 다시 말해, 의식과 잠재의식이 한 팀으로 일하게 해야 해요.
그러니 의식을 위해 한 번 더 말할게요. 의식적인 ‘나’가 담당하는 행동은 고작 5%예요.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에 기여하는 몫은 아주, 아주 작아요.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은 한발 비켜서서 잠재의식과 함께 일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변화를 원한다면 설득해야 할 상대는 잠재의식이에요.
셋이 합쳐진 나
이것이 ‘나’예요. 잠재의식이 지휘석에 앉아 통솔하고, 세 요소가 서로, 또 바깥세상과 얽히며 전반적인 상태를 만들어요. 여기서 ‘상태’란 어느 한 시점의 신체적·정서적 상태를 말해요. 둘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돼 있어요. 감정 상태가 몸에 영향을 주고, 몸의 상태도 감정에 영향을 줘요.
잠재의식이 주도하는 가운데, 안팎의 여러 이유로 상태가 달라져요. 그 상태는 행동 방식에 영향을 주고, 이어서 실제로 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쳐요. 그렇게 한 일들이 모두 모여 눈앞의 현실을 만들어요.
그 현실이 누가 봐도 엉망이 되고 나서야 의식도 알아차려요. 그리고 잠재의식과 의식이 서로 다른 것을 원하면, 현실은 싸움터가 돼요.
어떻게 싸움이 시작됐을까
살아오는 동안 대부분은 싸움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의식은 친구들과 나가 잔뜩 취하는 게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죠. 독한 술을 몇 잔씩 들이켜는 건 자랑거리였고, 친구들도 모두 그러고 있었으니 잠재의식도 신이 났어요.
의식과 잠재의식의 뜻이 같았고, 둘은 사실상 한패가 되어 나를 두들겨 패고 있었어요. 행동의 저울은 술을 마시는 쪽으로 단단히 기울어 있었죠.
이런 관계는 피해가 아프게 느껴지고 더는 웃어넘길 수 없을 때까지 계속돼요. 의식은 마침내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아요. 약 230킬로그램짜리 고릴라와 같은 우리 안에 갇혀 있는데, 그 고릴라는 노는 걸 좋아해요. 장난감을 치워야 하지만, 하나를 치울 때마다 고릴라는 두 개를 다시 꺼내 놓죠.
행동의 저울은 여전히 술을 마시는 쪽으로 단단히 기울어 있어요. 그래도 희망은 생겼어요. 의식과 잠재의식이 서로 다른 것을 원하기 시작한 그 틈에서, 다시 일어설 씨앗이 싹터요.
이제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 알았으니, 힘으로만 맞붙으면 이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거예요. 다행히 의식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차렸고, 맞설 수 있어요. 필요한 건 작전과 끝까지 밀고 나갈 의지예요.
어디서 시작하면 될까요?
도파민이에요.
고릴라가 아침밥으로 먹는 게 바로 그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