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 이해

전체 10장 중 9장

지금까지의 과정

해결 방법을 살펴보기 전에, 지금쯤 전체 과정을 다시 짚어 보면 좋겠어요. 이번에는 어떻게, 왜 여기까지 왔는지 더 깊이 이해한 상태에서 볼 수 있어요.

물론 사람마다 사정은 달라요. 다음 내용이 지금 처한 상황과 정확히 맞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 밑에 흐르는 큰 패턴은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요.

미리 말해 둘게요. 썩 기분 좋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에요.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엉망이 된 내 삶을 내 문제로 받아들여야 해요. 그 엉망이 된 모습 자체가 보내는 신호예요. 그 신호를 이해해야 해요.

음주 습관 형성

중독은 술을 접하기 전부터 시작된다고도 볼 수 있어요. 술을 끊고 나서 제가 가장 놀랐던 깨달음 중 하나는, 음주가 큰 문제이기는 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아니었다는 거예요. 중독은 흔히 그 사람 안에 자라기 좋은 토양이 있을 때 뿌리를 내려요. 술을 접하면 그 안에 잠재해 있던 문제에서 당장 얼마간 벗어나는 느낌을 얻어요. 그 편안함이 해결책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술은 평소의 거리낌 때문에 닫혀 있던 가능성의 문을 열어 줘요. 도파민이 끼어들어 이 흐름을 앞으로 밀어요. 여기에 잠재의식에 새겨진 작동 방식까지 더해지면, 길에 들어선 거예요.

이 일이 수년에 걸쳐 어떻게 흘러갈지 미리 내다보지 못하니, 그저 정상적인 일처럼 보여요. 또래도 괜찮다고 하고, 가족의 문화도 아마 그럴 거예요.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쪽이 이상할 정도예요. 안 그러면 무리에서 스스로 멀어지게 될 테니까요.

처음에는 새로웠던 일이 일상이 돼요. 주말, 퀴즈 모임, 축구 경기 등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패턴이 생겨요. 가고 싶거나 가야 하는 자리는 늘 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언제나 술이 있죠.

그러다 어느 순간, 술 마시는 습관 자체가 목적이 되고 모임이나 행사는 그 수단이 돼요. 예전에는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주말이 기다려졌어요. 그 자유를 누리는 한 방법으로 술을 마셨을 수도 있죠. 이제는 술을 마시는 때라서 주말이 기다려져요. 아주 큰 차이예요. 그 과정에서 ‘자유’는 사라져요.

대부분은 눈에 띄는 문제가 별로 없으니, 안 할 이유가 없어요. 생기는 문제마저 자랑거리가 돼요. ‘오늘 숙취가 최악이야.’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돈을 다 써 버렸어.’

모르는 사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의존이 생기는 거예요. 잠재의식은 메모해 두고, 반복되는 순서를 익히고, 주도권을 넘겨받았어요. 이제 자동 조종 상태로 움직여요.

한편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데 썼다면 얻었을 것들은 조용히 사라지고 있어요.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차원에서 기회비용이 쌓이는 거예요. 그 영향은 갈수록 불어나고, 펼칠 수 있었던 가능성에서 점점 멀어져요. 나와 같은 행동을 하는 친구들에게 끌리고, 그러지 않는 사람들과는 멀어져요. 다른 사람들이 일요일 아침 자연을 즐기거나, 그 밖에 얄미울 만큼 건전한 활동을 할 때면 아직 잠에서 깨지도 못해요. 그럴 여유가 없죠. 지금 가고 있는 길을 더 단단히 다지느라 바쁘니까요.

재미있고 새로운 일로 시작한 것이 어느새 슬그머니 삶을 차지했어요. 겉으로는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특별한 날을 기념한다는 명목이 있어요. 하지만 뒤편에서는 현실의 톱니바퀴가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이제 곧 그걸 알게 될 거예요.

문제 인식

결국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존재감을 드러내요. 미묘하고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눈앞에 나타나요. 처음에는 영향이 가벼울 수 있어요. 지나치게 피곤하고, 특히 월요일에 더 그래요. 생활은 조금 어수선하고 엉망이에요.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충동적으로 행동해요. 건강과 식생활도 나빠져요. 이런 일을 술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연결하더라도 막연한 정도예요.

시간이 흐르면 가볍던 문제가 더 커져요. 일하는 능률이 떨어져 티가 나요. 돈 문제를 겪으면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주머니에 술값 영수증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도 알아차리고 한마디씩 하기 시작할 수 있어요. 스스로 돌아보고 행동을 바꾸는 대신, 내 행동을 방해하거나 지적하는 사람과 상황을 치워 버려요. 내 행동을 괜찮다고 해 주는 곳도 달라져요. 일반적인 모임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자리로, 결국에는 같은 행동을 치켜세우는 값싼 오락물로 옮겨 가요.

즐거워서 시작한 일이 이제는 낮은 자존감, 불안, 좌절감, 우울감처럼 겹겹이 쌓이는 문제를 술로 달래는 일이 돼요. 술이 주던 진정 효과는 줄어들어요. 같은 만큼 마셔도 얻는 것이 줄어드니, 마시는 양은 더 늘어나요.

이제 상황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뚜렷해져요. 내면의 세계가 바깥의 삶에 그대로 드러나요.

엉망이에요. 사는 공간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어요. 말다툼이나 싸움에 휘말려요. 필름이 끊겨요. 두려움에 휩싸인 채 잠에서 깨요. 부끄러워서 지금 하는 일이나 이미 한 일을 숨겨요.

지금 처한 상황과 술의 연결은 분명해요. 술을 끊어야 한다는 걸 더는 합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어요. 그래서 끊어 보려고 해요. 의식적인 결심으로요.

현실 자각

처음 출발했던 곳에서 너무 멀리 와 버려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게 믿기 어려워요. 처음 술을 마시던 나를 마지막 도착 지점에 데려다 놓았다면, 기겁하고 다시는 마시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마 수년이 걸렸을 거예요. 조금씩, 조금씩 이런 방식으로 살고 존재하도록 길들여진 거죠. 매일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아요. 하루하루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지만, 몇 년 전 사진을 보면 모습이 너무 달라서 놀라요.

이제 결과는 온전히 드러났고, 문제는 너무나 현실적이에요. 술을 끊어야 한다는 걸 깨달아요. 끔찍한 반전은… 끊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줄여 보거나 한동안 쉬어 보려고 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요. 필름이 끊겼다가 다음 날 깨어나 ‘다시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또 마셔요.

이렇게 시도하고 또 시도하는 순환이 시작돼요. 답을 찾기 시작하고, 어느 정도 성과도 얻어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해도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와요. 잃었던 활력을 얼마간 되찾을 때마다, 이제는 적당히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딱 한 잔’으로 시작하지만, 현실에서는 다시 원점이에요.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은 무서워요. 이대로 가면 어디에 이를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아무리 끔찍하게 느껴져도, 회복으로 가는 길이 진짜로 시작되는 곳은 여기예요.

회복 결심

더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바닥에 이르렀는데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남은 선택은 하나예요.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이겨 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에요. 다른 길이 없으니, 무슨 일이 필요하든 할 거예요.

희생이 따를 거예요. 고통도, 지루함도 있을 거예요. 놓치는 일이 생기고 다른 사람을 속상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해요. 잠 못 드는 밤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을 거예요.

대신 믿음이 생길 거예요. 이 길 너머에는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에요. 정말로 있으니까요.